이상적인 소설

홍성필 (2009)

1.

 “오랜만이야. 어서 오게.”

 “그러게요. ‘흔적’ 이후로 처음 뵙는 것 같은데요.”

 비꼬는 듯한 눈으로 작가를 올려본다.
 “음. 보자 하니 그간 많이 서운했나 보군. 나도 여러 모로 바빠서 말일세.”

 “바쁘다는 말은 습관이 된다는 말씀도 선생님 입버릇이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자네도 알다시피 본업이 이게 아니라서 말이지. 군자금을 확보하려면 여기저기로 분주하게 뛰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시겠지요.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저를 다 찾아오시다니 어인 일이신가요. 특별한 일이라도?”

 “음. 사실 오늘은 특별한 부탁이 있어서 왔네. 다음 작품에 대해서인데…….”

 “작품에 대해서 제게 문의하시다니요. 선생님답지 않게 어인 일이세요?”

 “그게 그러니까, 자네가 승낙해줄까 해서 말이야. 아무리 등장인물이라 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오늘은 자주 말끝을 흐리시네요. 말씀해보시죠. 등장인물이라는 게 별건가요. 영화나 드라마처럼 출연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음……. 그렇게 말해주니 내 마음도 좀 가벼워지는군 그래. 사실 이번 작품은 미스터리인데…….”

 “요즘 일본 미스터리 작품도 읽고 그러시던데 그 영향을 받으셨나 보죠? 무척 치밀하게 계획도 세우셔야 할 텐데, 선생님 성격에 맞으시겠습니까?”

 “자네도 별걸 다 신경 쓰는군. 등장인물 치고는 간섭이 다소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좋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 이야기는 그만 하도록 하죠.”

 “고맙군. 사실 오늘 이렇게 자네를 찾아온 것은 내 작품에 대한 기획을 상의하러 온 것이 아니네. 자네한테 좀 어려울 수도 있는 부탁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이번에는 주인공이 아닌가 보죠?”

 “그런 사소한 걸로 작가라는 사람이 등장인물한테 양해를 구하겠나. 걱정 말게. 주인공일세.”

 “그렇다면요?”

 “사건의 범인이 되어줬으면 해서 말이지.”

 “범인이요? 강도 같은 것을 말씀하시나요?”

 “이 사람 하고는. 내가 지금 쓰려는 자품은 미스터리 중에서도 추리소설이라네.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범인이 고작 강도 가지고 되겠나.”

 “설마 사람을 죽이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살인 없는 추리는 글씨 없는 백일장이야.”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만, 저는 싫습니다. 다른 사람을 쓰시던지 해 주십시오.”

 “어허, 이 사람 성격 하고는. 잠깐 앉아보게. 내 말을 잠깐 들어보라니까. 그렇다고 맹목적인 살인범이 아니야. 지금 구상중인 작품은 여느 단순한 범인 찾기 소설이 아닐세. 인간을, 그것도 군중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들 하나하나를 그려내고 싶다는 것일세. 한 나라의 구성원인 국민들은 외국인 중에서 그 나라 국적을 나중에 취득한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모두 강제적으로 그 나라 국민이 된 거나 다름 없네. 단지 그 나라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나라 문화나 전통, 나아가 애국심이라는 것까지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렸을 때부터 심어지게 되는데, 그렇다고 그 국민 모두가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일단 적어도 남성 또는 여성으로 구분되고, 연령, 출신지나 성장배경, 경제적 여건이나 교육수준 등 나누려면 한도 끝도 없는데도 이를 모두 억지로 묶어서 ‘국민’이라는 걸세.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싫으시면 다른 나라로 이민 가시던지요.”

 “이 사람아. 이민을 간다 해도 역시 거기에는 또 다른 하나의 ‘범주’가 존재하겠지. 그리고 나는 이방인 취급을 받을 것이고 말일세. 아무튼 그런 무책임한, 말하자면 타의적인 그룹핑(grouping)에 의해 우리는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국민’이라고 하는 ‘군중’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럼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가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마치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라도 되는 것처럼 때로는 유사하게 때로는 동일한 척을 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비논리적 비현실적 비인간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세. 그래서 이는 어디까지나 편의상의 분류에 지나지 않으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결국 하나하나의 인간 그 자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은 것이라네. 알겠나?”

 “하지만 ‘추리’라고 하면 범행이 있고 탐정이나 경찰이 전모를 밝혀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아니. 이번 소설에서는 범인을 밝힌 상태에서 진행사려고 하네. 그러니 자네 장상철은 우선 범인이라는 사실이 읽은 이한테는 알려지고, 범인을 찾는 등장인물들만 모르는 거라네.”

 “항복선언을 하실 셈이신가요?”

 “무슨 그런 희괴한 소린가. 항복이라니. 나는 범행에 관한 밀실이나 단순한 알리바이를 쓰려고 하는 게 아니란 말이네. 그 사건을 매개로 해서 군중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의 인간상들을 그려내고 싶은 것이야.”

 “그렇다면 굳이 추리를 고집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군중 속 인간의 모습을 추리나 미스터리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추리’라는 틀로 무대를 제안한다면 사건이라는 인상 때문에 본질이 흐려지지 않을까요. 더구나 범인을 이미 밝힌 상태에서 시작한다면 다소 비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소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게으름의 산물이지요. 차라리 보통 소설 속에서 그 인간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편이 좋을 것 같지 않으신가요?”

 “흠. 자네 답지 않게 고집을 피우는 걸 보니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군그래.”

 “강도도 아니고 살인범이라면서요. 아무리 주인공이라 해도 그렇지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바로 수긍하기에는 심적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으니까요.”

 “등장인물이 가리는 게 많구먼.”

 “꼭 사람을 그렇게 해야 작품을 쓸 수 있나요? 사람 하나 다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괜찮은 글을 완성시키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혹시 능력의 한계를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려는 것은 아니겠죠?”

 “이 친구야. 어디 글이 작가 능력만 가지고 되는 줄 아나? 어느 작가 말에 의하면 등장인물이 펜 끝을 가만 두지 않을 만큼 활약한다더군. 자네나 나나 역시 마찬가지인 게야.”

 장상철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고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좋습니다. 전적으로 수긍할 수는 없으나 일단 그렇다고 하죠.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진범은 제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제가 경찰들의 오인에 의해 잡힌 범인으로 말이에요.”

 “잠깐. 그렇다면 나한테 지금 누명을 쓰게 하는 글을 강요하는 건가? 말도 안돼. 더구나 그 원인이 경찰의 오인체포라니. 이 땅의 경찰들, 특히 현장에서 발로 뛰는 형사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 줄 알기나 한가. 위로는 출세에 눈이 먼 상사와 주변에는 실책만 나오기를 밤낮없이 군침 흘리며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기자들. 경찰이라면 잠깐이라도 말조차 나누기 싫다며 근거 없는 편견으로 비협조적인 시민들 틈새에서 쉴새 없이 뛰어다니는 실무 형사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하는 말일세.”

 “그럼 이건 어떨까요? 그 사건은 증거도 증인도 없는 곳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2.

 그 사건은 증인도 증거도 없는 곳에서 발생했다. 실무형사진들도 주야로 온 시내를 누비며 탐문수사를 벌였으나 결국 단서 하나 건지지 못하고 수사본부에도 미궁으로 빠질 기색이 짙어져 갈 무렵, 한 용의자가 수사선상에 떠올랐다. 그에게는 알리바이가 없었으며 본인은 끝까지 부인했으나 결국 형이 확정되고 복역한 후 만기 출소했다.

 해질녘 서울 변두리. 아직도 이 큰 도시에 이처럼 허름한 곳이 남아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한 사내가 빈터 모퉁이에 싸여 있는 목재더미 위에 걸터앉아 자연(紫煙)을 내뿜고 있었다. 얼마 후 연배가 비슷한 다른 한 사내가 나타났다.

 앉아 있던 사내는 그를 보자 담배를 든 채로 천천히 일어서서 그를 보았다.

 “상철. 많이 야위었군.”

 “자네는 잘 지냈나. 앉게.”

 가벼운 악수를 나누고는 목재더미 위에 나란히 앞을 보고 앉았다.

 먼저 와 있던 사내는 상철에게 말없이 담배를 내민다.

 “이 또한 오랜만에 보는군.”

 조용히 집어 들고 사내가 내미는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음미하듯 연기를 내뱉는다.

 “오래 되었지. 그 안에는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다던데.”

 “그래도 법무부 시계 덕분에 이렇게 나올 수 있지 않았나.”

 다시 정적.

 “왜 끝까지 말을 안 했나.”

 “말을 안 한 것은 아니네. 단지 안 한 것을 안 했다고 했을 뿐이지.”

 “그 동안 나는 자네가 부러웠네.”

 “내가?”
 

 “자네는 나와 달리 그 안에 있더라도 최소한 나보다는 자유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또 정적.

 상철은 앉은 채로 문득 그를 돌아보았다.

 “다른 말은 말게. 잘 있어주어서 다행일세. 만나서 반가웠네.”

 “진심인가?”

 “물론이지.”

 짧은 침묵이 흐른 후 그는 상철에게 말했다.

 “이제 어쩔 생각인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라면…….”
 

 “아닐세. 자네 말대로 내가 안에서 자유를 즐겼다면 이제 바깥세상에서의 자유를 누려봐야겠지.”

 “이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아마 오늘이 마지막 만남일 걸세. 나는 자유를 나의 전유물로 삼을 생각은 없거든.”

 그가 고개를 들어 보니 상철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잡은 상철의 손은 거칠고도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