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일대기


작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일대기입니다.
작품명 중 링크가 된 작품은 제가 이미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년도

나이

 

작품목록

1909년

 

6월 19일 아오모리(靑森) 현 츠가루(津輕) 군 카나기마치(金木町)에서 11남매 중 10번째로 출생.
본명 츠시마 슈지(津島修治).
당시 부친인 츠시마 겡에몬(津島源右衛門)은 굴지의 대지주로서 가족과 하인들 총 30명이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1912년

3세

부친이 중의원 의원(衆議院議員:이른바 下院 의원) 당선.

 

1916년

7세

카나기 제일심상소학교 입학. 성적은 우수했다.

 

1922년

13세

카나기 제일심상소학교 수석 졸업.
부친이 고액납세자로서 귀족원 (貴族院: 上院. 현 참의원(參議院)) 의원으로 선출됨.

 

1923년

14세

부친 별세.
아오모리 중학교 입학.

 

1925년

16세

이 무렵부터 작가를 지망하여, 친구들과 동인지 '신기루'에 소설, 희곡, 수필 등을 발표.

 

1927년

18세

히로사키(弘前) 고등학교 문과 갑종에 입학.
7월, 당시 심취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자살소식에 큰 충격을 받아 학업을 포기하고 화류계 출입을 시작한다.
기생 오야마 하츠요(小山初代)를 만남.

 

1928년

19세

5월 동인지 세포문예(細胞文藝)를 창간하여 츠지시마 슈지라는 필명으로 '무간나락(無間奈落)'을 발표. 9월 4호로 폐간될 때까지 이부세 마스지, 후나바시 세이이치(舟橋聖一), 하야시 후사오(林房雄) 등 작가로부터 원고도 받음.

 

1929년

20세

동생 레이지(禮治)가 질병으로 사망. 고교신문과 동인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
가을 무렵부터 좌경사상에 심취. 자신의 출생신분에 의한 고민으로 12월10일 밤 하숙집에서 수면제로 자살을 기도하나 실패(첫번째 자살미수).

 

1930년

21세

3월, 고교 졸업. 4월 동경제국대학 (현 동경대학) 불문과 입학. 이부세 마스지를 처음 만나 사사.
7월, '학생군(學生群)'을 아오모리 지방의 동인지 '좌표(座表)'에 발표. 이 무렵부터 정치운동에 관여.
가을 오야마 하츠요가 상경해 오지만 맏형인 분지(文治)가 산경하여, 생가로부터의 분가를 조건으로 결혼을 승낙. 하츠요는 일단 귀향한다.
11월, 긴자(銀座)에 있는 까페 '할리웃' 호스티스인 '타나베(田部) 아츠미' (본명 시메코, 19세, 유부녀)를 만나 사흘간 함께 지낸 후 카나가와(神奈川)현 바닷가에서 칼모틴(수면제의 일종)으로 자살을 기도하나 아츠미만 운명(2번째 자살미수). 자살 방조죄 혐의를 받으나 기소유예 처분.

 

1931년

22세

2월, 다시 상경한 하츠요와 동거. 반제국주의학생동맹에 가담하여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주린당(朱麟堂)이라는 호를 쓰며 하이쿠(俳句)에 심취하기도 하였으며, 학교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1932년

23세

봄. 불법정치활동에 의해 거처를 전전한다. 동거 이전에 하츠요의 과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7월, 불법정치활동을 포기하고 아오모리 경찰서에 자수. 1개월간 구류.
이 무렵부터 '추억(思い出)'을 집필하기 시작.

 

1933년

24세

2월, 처음으로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으로 '열차'를 '선데이 토오쿠(東奧)'에 발표.
3월, 동인지 '해표(海豹)'에 '어복기(魚服記)'를 발표.

 

1935년

26세

2월, '역행(逆行)'을 '문예(文藝)'에 발표. 동인지 외에 발표한 첫 작품이다.
3월, 대학 졸업이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반년 후 수업료 미납으로 제적), 미야코(都) 신문사 입사시험에 낙방하여 15일, 카마쿠라 (鎌倉) 산중에서 목을 메어 자살을 기도하나 실패(3번째 자살미수).
4월, 맹장염으로 입원. 수술 후 복막염을 일으켜 진통제로 사용한 피비날에 중독됨.
8월, '역행'이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가 되나 2등으로 낙선.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심사평에 항의하여 '카와바타 야스나리에게'를 발표.
사토 하루오(佐藤春夫)를 만나 이후 사사.
경성(서울)에 있는 타나카 히데미츠(田中英光)와 편지에 의한 교류가 시작됨.

逆行, 道化の華, 玩具, 雀こ, もの思う葦, 猿ヶ島,  ダス·ゲマイネ, 地球圖

1936년

27세

2월, 파비날 중독이 악화되어 동경 시바(芝)에 있는 사이세이카이(濟生會)병원에 입원. 완치되지 않은 채 1개월만에 퇴원. 처녀창작집 '만년(晩年)'을 간행.
파비날 중독과 폐병 치료를 위해 방문한 군마(群馬)현 타니가와(谷川)온천에서, 제3회 아쿠타가와 상 심사에서 '이미 신인이 아니다'는 이유로 최종심사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음.
10월, 이부세 마스지 등의 권유로 에코다(江古田)에 있는 무사시노(武藏野) 병원에 1개월 입원하여 파비날 중독을 완치.

碧眼托鉢, めくら草紙, 陰火, 雌について, 虛構の春, 狂言の神, 創世記, 喝采,
처녀창작집 晩年

1937년

28세

3월, 오야마 하츠요와 타니가와다케(谷川岳) 산기슭에 있는 수상온천에서 칼모틴으로 자살을 기도하나 실패(4번째 자살미수).
귀경 후 하츠요와 헤어짐.
이 해부터 이듬 해까지 간혹 수필을 쓸 뿐, 거의 활동을 중단한다.

二十世紀旗手, HUMAN LOST, 燈籠

1938년

29세

7월, 오랜 침묵을 깨고 '모사'를 쓰기 시작한다.
9월, 야마나시(山梨) 현 미사키 토오게(御坂峠)의 텐카자야(天下茶屋)에서 장편 '불새(火の鳥)'의 집필에 전념하였으나 결국 이 소설은 미완에 그친다.
11월, 이부세 마스지가 부모를 대신하여 야마나시 현 츠루(都留)고등여학교 교사 이시하라 미치코(石原美知子:26세)와 맞선을 보고 약혼.

만원(滿願), 모사

1939년

30세

1월, 이부세 마스지의 자택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코후(甲府)시 미사키쵸(御崎町)로 이사.
4월, '황금풍경(黃金風景)'이 '국민신문'의 단편소설 콩쿠르에서 당선.
9월, 동경 미타카(三鷹)로 이사하여 전쟁전후를 제외하고는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 머문다.

富嶽百景, I can speak, 黃金風景, 女生徒, 懶惰の歌留多, 葉樓と魔笛, 八十八夜, 좌흥이 아니다, 축견담, 美少女, ア、秋, おしゃれ童子, 피부와 마음

단편집 '사랑과 미에 대하여', '女生徒'

1940년

31세

12월, 아사가타니카이(阿佐ヶ谷會:중앙선 부근에 거주하는 문인들의 친목회)에 출석. 이후에도 종종 참석한다.
단행본 '여생도'가 제4회 키타무라 토오코쿠(北村透谷)상 부상(副賞)으로 입상
 

女人訓戒, 俗天使, 鷗, 春の盜賊, 女の決鬪, 美しい兄たち, 직소, 老ハイデルベルヒ, 善藏を思う, 誰も知らぬ, 달려라 메로스, 古典風, 盲人獨笑, 乞食學生, 一燈, きりぎりす, ある畵家の母, ろまん燈籠,

단편집 '피부와 마음', '思い出', '女の決鬪'

1941년

32세

2월, 장편 '신 햄릿' 집필 개시. 5월, 완성. 7월, 장녀 소노코(園子) 탄생.
8월, 모친 병문안으로 10년만에 고향인 카나기마치로 귀향.
9월, 오오타 시즈코(太田靜子, 27세)가 친구와 함께 첫 방문.
11월, 문인 징용이 내려지나 흉부질환으로 면제됨.

淸貧譚, みみずく通信, 東京八景, 佐渡, 服裝について, 千代女, 令孃アユ, 누구, 風の便り, 일등(一燈)

단편집 '東京八景', '千代女', 장편 '신 햄릿', 한정판 '직소'

1942년

33세

10월, '불꽃놀이(花火:하나비)'를 '문예(文藝)'에 발표하나 시국에 맞지 않다며 전문 삭제된다. 1946년 11월, '박명(薄明)'에 '일출 전(日の出前)'로 제목을 바꾸어 수록됨.
12월, 모친 별세. 단신 귀경한다.

恥, 新郞, 十二月八日, 律子と貞子, 水仙, 小さいアルバム, 불꽃, 기다림

단편집 '風の便り', '老ハイデベルトヒ', '女性', 장편 '正義と微笑', 수필집 '文藻信天翁'

1943년

34세

3월, 코후에 가서 지난 해 말부터 집필중인 '우다이진 사네토모(右大臣實朝)'를 완성.
10월, '운작의 소리(雲雀の聲)'가 완성되었으나 검열에 걸릴 우려가 있어 출판을 연기. 이듬해가 되어서야 출판하게 되었으나 인쇄소가 공습을 당해 발행 직전에 있던 책들이 소실. 1945년에 발행된 '판도라의 상자(パンドラの匣)'는 이 작품의 교정판을 바탕으로 집필된 것이다.

故鄕, 黃村言行錄, 금주의 마음, 鐵面皮, 歸去來, 不審庵, 作家の手帖

단편집 '富嶽百景', 장편 '右大臣實朝'

1944년

35세

5월, '츠가루(津輕)'를 쓰기 위해 츠가루 지방을 여행.
8월, 장남 마사키(正樹)'  탄생.
12월, 정보국과 문학보국회(文學報國會)의 의뢰를 받아 '석별(惜別)'을 쓰기 위해 센다이(仙臺)를 방문하여 노신(魯迅)이 센다이에 머물렀을 때의 일을 조사.

佳日, 散華, 雪の夜の話, 東京だより

단편집 '佳日', 장편 '津輕'

1945년

36세

3월, 공습하에 있던 동경에서 '오토기 조오시(お伽草子)'의 집필을 시작하여 6월에 완성.
4월, 폭격을 맞아 집이 피손되어 코후에 있는 처가로 피난.
7월, 폭격으로 처가 가옥도 전소되어 처자를 데리고 간신히 츠가루에 있는 생가에 도착.
종전(終戰).
농지개혁령으로 인하여 츠시마 일가의 몰락이 시작됨.

竹靑, パンドラの匣

단편집 '新釋諸國이야기', 장편 '惜別', 'お伽草子'

1946년

37세

11월, 약 1년 반의 피난생활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미타카의 자택으로 돌아간다.

庭, 부모라는 두 글자, 거짓말,
화폐, やんぬる哉, 十五年間, 未歸還の友に, 冬の花火, 苦惱の年鑑, 찬스, 春の枯葉, 雀, 바다,たずねびと, 親友交歡, 男女同權

단행본 'パンドラの匣', 단편집 '薄明'

1947년

38세

2월, 카나가와 현 소가(曾我)에 있는 오오타 시즈코를 방문하여 일주일간 머물다가 타나카 히데미츠가 피난하고 있던 이즈(伊豆)의 미츠하마(三津浜)에 가서 3월 상순까지  오오타 시즈코의 일기를 바탕으로 '사양(斜陽)' 1, 2장을 쓴다.
3월, 차녀 사토코 (현재 작가로 활동중인 츠시마 유코(津島祐子)) 탄생.
미타카 역전 포장마차에서 전쟁미망인 야마자키 토미에(山崎富榮:28세)를 만남.
4월, 새로 빌린 미타카의 작업실에서 '사양'을 집필하여 6월에 완성.
11월, 오오타 시즈코 사이에서 낳은 딸을 인지하여 하루코(治子)로 명명. (현재 오오타 하루코(太田治子)는 작가로 활동중)
단행본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다.

뚝따닥 뚝딱, メリイクリスマス, 母, ヴィヨンの妻, 父, 女神, フォスフォレッセンス, 아침, 斜陽, おさん

작품집 '冬の花火', 단편집 'ヴィヨンの妻', 단행본 '斜陽'

1948년

39세

3월에서 5월에 걸쳐 '인간실격'을 집필.
이 무렵 피로가 극심하여 불면증까지 겹쳐 간혹 각혈도 했다.
4월, 출판사인 야구모(八雲)서점에서 다자이 오사무 전집이 간행되기 시작한다.
6월 13일 밤, '굿바이'의 초고, 유서 몇 통, 이바 하루베(伊馬春部)에게 남긴 시 등을 책상맡에 놓고 야마자키 토미에와 함께 타마가와 죠스이(玉川上水)에 투신.
19일, 사체가 발견되어 21일, 장례위원장 토요시마 요시오(豊島與志雄), 부위원장 이부세 마스지 등에 의해 고별식이 거행되었다.
7월, 미타카의 선림사(禪林寺)에 잠들다.

犯人, 酒の追憶, 향응부인, 비잔(眉山), 美男子と煙草, 如是我聞, 渡り鳥, 女類, 樓桃, 人間失格, グッド·バイ, 가정의 행복

단행본 '人間失格', 단편집 '樓桃', 수필집 '如是我聞'